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석가탄신일을 기념해 석굴암 내부를 보기 위해, 경주 당일치기를 다녀왔어요.
석굴암과 불국사를 중심으로, 경주 당일치기 루트 공유할게요.
석굴암-불국사-황룡사지, 분황사-안압지(동궁과 월지), 에밀레종-첨성대, 대릉원-월정교
경주
현재는 경상북도에서 안동시에 이어 두 번째로 넓은 기초자치단체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신라의 건국(기원전 57년)부터 신라 멸망(935년)까지, 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습니다.
서라벌(徐羅伐), 금성(金城) 등으로 불렸고,
신라가 멸망한 935년(고려 태조 18년), 현재의 지명인 '경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동경(東京), 계림부(鷄林府) 등으로 바뀌었다가, 조선 시대에 다시 경주로 바뀌었으며, 영남 남인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사찰, 유적, 석탑 등 많은 신라시대 문화재와 경주 양동마을 등 조선시대 양반마을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5곳의 경주역사유적지구(불국사, 석굴암,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지, 산성 등)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5개의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신라천년(B.C 57 - A.D 935)의 고도(古都)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유적, 왕경(王京)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뛰어난 유적으로 평가됩니다.
- 월성지구(月城地區): 옛 왕궁 터
- 황룡사지구(黃龍寺地區): 불교 사찰
- 산성지구(山城地區): 방어용 산성
- 남산지구(南山地區): 불교 유적
- 대릉원지구(大陵苑地區): 고분 밀집
석굴암
관람 안내
관람시간: 오전 9시~ 오후 6시 (주중, 주말, 공휴일 동일)
*입장마감 6시
*연중무휴
*반려동물 입장 불가
불국사 문화재관람 비용: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2023년 5월 4일부터 관람료가 무료입니다.
대신 주차요금은 받아요.
- 소형, 중형차: 2,000원
- 대형차(버스): 4,000원
사전에 문의한 결과, 석굴암은 석가탄신일에는 오전 7시부터 개장한다고 해서, 그 시간에 다녀왔어요.

석굴암 소개
석굴암은 신라 751년(경덕왕 10년)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창건을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하였으며, 건립 당시에는 석불사라고 불렀다.
경덕왕은 신라 중기의 임금으로 그의 재위기간(742∼765) 동안 신라의 불교예술이 전성기를 이루게 되고, 석굴암 외에도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황룡사종 등 많은 문화재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그 주위 벽면에 보살상 및 제자상과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했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있다.
석굴암 석굴의 구조는 입구인 직사각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이 복도 역할을 하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360여 개의 넓적한 돌로 원형 주실의 천장을 교묘하게 구축한 건축 기법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뛰어난 기술이다.
석굴암 석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실에는 좌우로 4구(軀)씩 팔부신장상을 두고 있고, 통로 좌우 입구에는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였으며, 좁은 통로에는 좌우로 2구씩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원형의 주실 입구에는 좌우로 8각의 돌기둥을 세우고, 주실 안에는 본존불이 중심에서 약간 뒤쪽에 안치되어 있다.
석굴암 본존불인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다.
높이 약 3.4미터의 거대한 불상이다. 연화좌(蓮花座) 위에 부좌(趺坐)하였고, 화강석으로 조각했으며 수법이 아주 정교하며 장중한 기운이 넘치는 세계 석굴의 걸작이다.
오른손은 무릎에 걸친 채 검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摩觸地印)을 하였고, 왼손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큰 깨달음을 얻은 모습을 표현했기에 성도상이라고도 한다.
주실의 벽면에는 입구에서부터 천부상 2구, 보살상 2구, 나한상 10구가 채워지고, 본존불 뒷면 둥근 벽에는 석굴 안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원숙한 조각 기법과 사실적인 표현으로 완벽하게 형상화된 본존불, 얼굴과 온몸이 화려하게 조각된 십일면관음보살상, 용맹스러운 인왕상, 위엄 있는 모습의 사천왕상, 유연하고 우아한 모습의 각종 보살상, 저마다 개성 있는 표현을 하고 있는 나한상 등 이곳에 만들어진 모든 조각품들은 동아시아 불교조각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주요 유물은 다음을 참고하세요.
http://seokguram.org/bbs/content.php?co_id=div#
불국사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로 소개됩니다.
관람 안내
관람시간: 오전 9시~ 오후 6시 (주중, 주말, 공휴일 동일)
*입장마감 6시, 퇴장시간 7시
*연중무휴
*반려동물 입장 불가
불국사 문화재관람 비용: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2023년 5월 4일부터 관람료가 무료입니다.
대신 주차요금은 받아요.
- 승용차 (1,000cc 미만): 2,000원
- 중형차 (1,000cc 이상): 2,000원
- 대형차 (버스): 4,000원
불국사 소개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528년(법흥왕 15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했고,
670년(문무왕 10년)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751년(경덕왕 10년)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른 기록인, 《불국사사적(佛國寺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신라의 제19대 왕 눌지왕(訥祗王, 재위 417-458) 때,
삼국시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의 승려 아도(阿道)가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祠)되었다 전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5 <대성효 2세 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 따르면,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당시의 건물들은 대웅전 25칸, 다보탑·석가탑·청운교(靑雲橋)·백운교(白雲橋), 극락전 12칸, 무설전(無說殿) 32칸, 비로전(毘盧殿) 18칸 등을 비롯하여 무려 80여 종의 건물(약 2,000칸)이 있었던 장대한 가람의 모습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는 불국사 창건에 관한 최고의 기록이지만,
문헌적인 근거가 약해,
불국사가 일정 기간에 창건되기 보다는
긴 세월동안 여러 세력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오늘날의 일반적 견해입니다.
이로써 보아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아도,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5월, 왜군의 방화와 파괴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습니다.
1604년(선조 37년) 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년)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重修)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 와중에 유물의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습니다.
8·15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며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해,
1973년 6월 대역사(大役事)를 끝마쳤습니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 관음전 · 비로전 · 경루(經樓) ·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泛影樓) · 자하문(紫霞門) 등이 새롭게 단장되어 현재의 불국사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2008년 12월에서 2009년 12월까지 다보탑 해체 수리작업이 있었고,
2012년부터 시작된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2015년에 사리장엄구가 재봉안 되기도 했습니다.
전각과 탑 등 문화재에 대한 소개는 다음을 참고하세요.
http://www.bulguksa.or.kr/bbs/content.php?co_id=palace

꼭 봐야 할 주요 유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입구인 일주문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순으로 살펴볼게요.
불국사의 예배공간인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은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의 연화교와 칠보교가 있습니다.
청운교 백운교
청운교와 백운교는 대웅전을 향하는 자하문과 연결된 다리를 말하는데, 다리 아래의 일반인의 세계와 다리 위로의 부처의 세계를 이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청운교(靑雲橋)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白雲橋)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체 34 계단으로 되어 있는 위로는 16단의 청운교가 있고, 아래로는 18단의 백운교가 있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무지개모양으로 이루어진 다리 아랫부분은 우리나라 석교나 성문에서 보이는 반원아치모양의 홍예교의 시작점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보탑(국보 제20호)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751년(경덕왕 10년)으로 추측되며,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지만,
높이는 10.29m, 10.75m로 비슷해요.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웅전 앞 뜰 동서 쪽에 각각 세워져 있는데,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다보탑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 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십(十) 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 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석가탑(석가여래상주설법탑, 무영탑)
대웅전 앞 뜰 서쪽탑이 삼층석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으로, ‘석가탑’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탑은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때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과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의 양식을 이어받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훌륭한 작품이다. 탑 전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2층의 기단이 튼실하게 짜여 있으며, 목조건축을 본떠서 위·아래층 기단의 모서리마다 돌을 깎아 기둥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탑신에도 그러한 기둥을 새겼으며, 지붕돌의 모서리들은 모두 추켜올려져 있어서 탑 전체에 경쾌하게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더한다.
탑의 머리장식(상륜부)은 16세기 이전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3년 남원 실상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7호)의 머리장식을 본떠서 복원하였다. 탑 주위로 둘러놓은 주춧돌 모양의 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이를 부처님의 사리를 두는 깨끗한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탑은 ‘무영탑(無影塔: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석가탑을 지은 백제의 석공(石工) 아사달을 찾아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 온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연못에 몸을 던져야 했던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1966년 9월에는 안타깝게도 도굴꾼들에 의해 탑이 손상되는 일이 있었으며, 그해 12월 탑을 수리하면서 2층 탑신의 몸돌 앞면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사각형의 공간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사리용기들과 유물을 찾아냈는데,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국보 제126호)이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닥나무 종이로 만들어졌다.
대웅전,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
불국사 대웅전은 창건당시 기단과 석등 등의 석조물이 보존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구 위에 영조 41년(1765)에 중창된 건물로 중창기록과 단청에 대한 기록이 함께 보존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건축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다포계 건물로 기둥을 생략한 내부 공간 구성 및 살미첨차의 초화문양(草花文樣)과 봉황(鳳凰) 머리 조각, 평방에서 돌출된 용머리 조각 등 내·외부를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우수한 불전으로 그 가치가 크다.
비로전(毘盧殿): 금동비로자나불좌상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은 화엄세계(華嚴世界)의 본존불(本尊佛)로서, 부처의 지혜가 태양과 같이 밝고 광대무변함을 상징한다.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국보 제26 호로 8 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이 불상의 높이는 1m 77cm이다. 원래는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사리탑(舍利塔, 보물 제61호)
불국사 비로전 좌측 보호각에 보존되어 있는 사리탑이다.
겉모습이 석등과 비슷하게 생긴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이 되는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두었다. 기단은 연꽃잎을 새긴 반원모양의 돌을 위 · 아래에 두고, 그 사이를 북(鼓) 모양의 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기둥에 새겨진 구름무늬에서 강한 생동감이 묻어난다. 탑신(塔身)은 가운데가 불룩한 원통형으로, 네 곳마다 꽃으로 장식된 기둥모양을 새겨두었다. 기둥에 의해 나뉘어진 4면에는 감실(龕室, 불상을 모시는 방)을 안쪽으로 움푹 파놓은 후, 그 안에 여래상(如來像)과 보살상(菩薩像)을 돋을새김 하여 모셔놓았다. 지붕돌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6각으로 줄어든다. 경사면은 완만하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평면이 8 각인 기본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화려한 조형과 섬세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1905년 일본인에 의해 동경의 우에노(上野) 공원으로 불법 반출되었다가 1933년에 반환된 것으로, 일제시대 당시 모진 수난을 당한 우리 문화재의 아픈 역사를 잘 말해주고 있다.
극락전(極樂殿):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극락전은 1925년에 중수하였다.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이므로 법당 이름을 극락전이라고 한다.
이 법당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은 국보 제27호로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이 불상의 높이는 1m 77cm로 본래는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래의 벽화는 1514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고, 지금의 후불벽화는 1973년 중건 때 조성한 것이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세 줄로 된 16단의 계단이 있으며, 이 48개의 계단은 아미타부처님의 48 대원(大願)을 표현한다.
극락전 앞 석등(長明燈)이 단아하면서도 매우 아름답다. 장명등은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중생들에게 밝혀주는 등불이다. 대웅전 앞 석등과 그 모양이 똑같아 동시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22호)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된 다리로, 세속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체 18 계단으로, 밑에는 10단의 연화교가 있고 위에는 8단의 칠보교가 놓여있다.
청운교 ·백운교보다 규모가 작을 뿐 구조나 구성형식 등이 매우 비슷한데,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성이나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한 점, 다리 아래가 무지개 모양을 그리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비슷한 구성 속에도 이 다리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연화교의 층계마다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오랜 세월 동안 스쳐간 사람들의 발자국 탓에 많이 닳아서인지 조각이 희미해져 있어, 지금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창건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오르내리며 극락왕생을 기원하였고, 비구니가 된 신라 헌강왕비도 이곳을 오가며 왕의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동쪽의 청운교와 백운교가 웅장한 멋을 보여주는데 비해, 섬세한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어, 불국사의 조형에 조화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가구식 석축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전으로 통하는 중문(中門)인 안양문(安養門)과 부처님의 몸에서 비추는 자금광(紫金光)이 안개처럼 서린문이라는 뜻의 자하문(紫霞門) 앞에는 아름답게 꾸민 가구식 석축이 동서로 놓여있다.
동쪽 자하문 앞의 것은 백운교의 계단 위에서 단을 달리하여 상단의 석축을 변화 있게 꾸며 조화를 이루었다. 안양문 앞에서는 밑에서부터 수직으로 석축을 쌓되 중간중간 칸을 이루어 다듬은 석주(石柱)와 인방석을 가구식으로 걸고, 그 가운데를 자연석으로 채운 행태이다. 자하문이나 범영루 앞의 하층 석축은 밑에서부터 거대한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가공석재를 가구식으로 짜 올린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으며, 범영루의 돌출부 기둥 밑에는 점차형의 석재를 차곡차곡 쌓아 돌기둥을 만들었고 또 석교 밑에서는 정교한 홍예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과 극락전 구역의 서측회랑 하부 석축이 포함되는데, 구조형식을 살펴보면 수직의 석주와 수평의 주두석 및 동자주, 초석, 갑석으로 장방형의 격자 틀을 형성하고, 그 안에 자연석을 밀실하게 채워 넣는 수법으로 쌓았으며, 대웅전 석축은 1단, 극락전 석축은 2단으로 구성되어 약간의 차이가 있다.
당간지주
불국사 경내 입구 대석단 앞에 동서방향으로 2쌍이 나란히 서있다.
사찰에서 의식이 있을 때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단다. 당을 매다는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에 세운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나란히 서있는 2쌍의 당간지주 중 동쪽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이지만, 서쪽 당간지주는 기둥 크기와 제작 수법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편 당간지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불국사와 관련하여 중요한 석조유물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조형이나 장식적인 의장면에서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의 양식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서편 당간지주는 당간지주의 원래 용도가 단절된 조선시대에 이르러 괘불을 현괘하기 위한 용도로 다시 고안된 사례로 중요한 문화사적 의의를 지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양 기둥의 양식이나 제작연대가 다른 것을 조합하고 있어 조형성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동편 당간지주는 전반적으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고 하겠으나 양 기둥의 하부가 절단된 것을 1924년도에 시멘트로 접합하였고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석가탑에서 나온 불국사 박물관에 소장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석조(石槽)
큰 절에 배치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수조로, 내부에는 거대한 연꽃모양이 새겨져 있어 석조의 물속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효과를 주며, 외부에는 돌림띠를 돌리고 안상(眼象) 무늬로 장식하였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우아하고, 장식 또한 정교하여 통일신라 석조(石造) 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을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석굴암과 불국사 유물만으로도 내용이 길어져서,
동궁과 월지 이하부터는 다음에 이어서 소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