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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 그 마무리

by 사업하는 철학자 202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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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나훈아가 은퇴하며 위태로운 현 시국에 대한 용감한 소신을 밝혔는데요.  
오늘은 나훈아의 가수 인생을 살펴볼게요.  
 
 

기본정보

  • 본명: 최홍기(崔弘基)
  • 출신지: 경상남도
  • 별명: 트로트 황제, 가황(歌皇)
  • 데뷔: 1966년 '천리길'
  • 생년월일: 미상

*생년월일은 1947년 2월 11일이라고 프로플에는 적혀있지만, 1951년생이라고 소개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데뷔하며, 얕잡아 보일까 하여 나이를 높였다고 여겨집니다.
51년생이라고 밝혀진 것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들 이야기로 인해 추측되었고,
보다 타당한 나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노래 특징

1200여 곡의 곡 중
대표곡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 고장난 벽시계, 무시로, 사랑, 잡초, 남자의 인생, 사나이 눈물, 너와 나의 고향, 고향역, 사랑은 눈물의 씨앗, 님 그리워, 가지마오 등등

 
너무 많아서 그중 많이 듣는 것들로 추려봤어요. 
 

  • 특유의 창법: 꺾기
  • 작사 및 작곡
  • 평가: 블루스와 민요를 트로트에 접목한 형태로서의 음악적 시도

 
 

시기별 활동

1970년대: 최고 인기

70년대 가요계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였습니다.
1972년 6월 4일 밤, 서울 태평로 시민회관(현 서울시의회 건물) 공연에서, 괴한으로부터 왼쪽 얼굴에 깨진 사이다병으로 테러를 당하고, 70바늘을 넘게 얼굴을 꿰매서 그 흉터가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1973년 7월 비밀리에 공군 병사로 자원 입대하여, 군악대에서 복무하였습니다.
 

나훈아 3번의 결혼과 이혼

참고로, 나훈아는 1973년 이숙희, 1976년 김지미, 1985년 정수경과 결혼했습니다.
마지막 이혼은 2016년에 마무리 됐습니다.  
 

1980년대: 주춤

1980년대에는 가왕 조용필이 본격적으로 대중가요계에 나타났습니다.
(조용필은 70년대에 데뷔는 했지만, 인지도가 생긴 후 대마초 누명으로 구속되었습니다.
무죄임에도 방송활동 자체를 오랫동안 하지 못했습니다)
 
조용필의 등장과, 둘째 부인 김지미가 동반 은퇴 혹은 활동중단을 요구하기 시작하던 시기가 맞물려,
나훈아가 밀리게 됐습니다.
결국 나훈아는 김지미의 제안을 뿌리치고 결별했지만, 이미 조용필의 인기가 가요계를 압도했습니다.
 
1987년,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안타까워하며,
망자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 '엄니'를 직접 작사작곡했습니다.
 
나훈아는 광주시 망월동 5.18 묘역(현재 구묘역)에 참배하고,
'엄니' 테이프 2,000개를 5.18 유족들에게 배포하려고 했지만, 정권의 방해로 실패했습니다.
 
결국 '엄니'는 33년이 지난 2020년에야 발표되었습니다.
 

1990년대: 여전한 인기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아이콘이라고 여겨지던 남진과 함께 각각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1993년 남진은 '내 영혼의 히로인' 등을 히트시키며 또 한 번 주목을 받았으며,
나훈아는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들을 내고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방송 출연은 뜸했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서 나훈아의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지상파 TV에선 매년 명절 때마다 나훈아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다했습니다.
 
전성기가 지난 이후,
남진은 많은 방송 출연과 공개 활동으로 이미지가 일찍 소비된 반면,
나훈아는 신비주의 전략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되고 있습니다. 
 
 

2000년대: 나훈아 신드롬의 시작과 혼란, 그리고 잠적

 
광복 60주년을 맞아 2005년 9월 1일, 서울 노들섬에서 "나훈아의 아리수"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추석 연휴인 2005년 9월 17일에 MBC에서 당시 콘서트 녹화본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이 콘서트는 매우 화려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콘서트 오프닝 때, 300명의 병사들을 세우고 흰 갑옷을 입은 채 백마를 탄 상태로 노래를 불렀고,
엔딩 때는 거북선을 타고 화려한 연출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아리수 가사

아리수: 2005년에 나훈아가 작사 및 작곡하여 발표한 노래.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흘러간 강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한 번 떠난님은 오지 않는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흰구름 두둥실 강물에 흐른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소리개가 아리수를 날은다

아리 아리 아리수 흘러간다 아리수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수 흘러간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흰구름 두둥실 강물에 흐른다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 잇고
강물처럼 역사는 흐른다

아리 아리 아리수 흘러간다 아리수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수 흘러간다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수 흘러간다
아리수 흘러간다 아리수 흘러간다

 
 
이후 나훈아는 나훈아 빅콘서트라는 명칭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간헐적으로 하는 것 외에는
연예 활동을 하지 않은 채 칩거생활을 반복했습니다.
 
2007년 3월 예정된 단독 콘서트가 취소되며
2006년의 순회 콘서트가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2008년, 나훈아 괴담, 야쿠자 테러 성기 절단설과 관련된 인터뷰 이후로 잠적하고는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2010년대: 화려한 복귀

11년 만에 복귀하여 2017년 하반기,
2017년 7월 16일 앨범 "Dream Again"으로 컴백했습니다.
 
2017년 11월 3일부터 11월 5일, 총 3일간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게스트 없이 단독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서울 공연 첫날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아무런 말 없이 10곡 넘게 노래만 부르던 나훈아는
’에끼 이사람이’ 무대 뒤 비로소 관객들에게 직접 인사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하다. 미안한 마음은 구석에 놔두고 얼굴을 두껍게 하고 공연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팬들이 환호로 위로를 하자,
나훈아는 “노래를 11년 굶었다” “계속하자 하면 밤새도록 노래할 준비가 돼 있다” 고 전했습니다.

2017년 서울, 대구, 부산 콘서트의 대흥행으로 2018년에는 20개 도시 전국투어를 추가로 개최했습니다.
 
 

2020년대: 서로 보듬는 인간성을 상기시키는 가황

2020년 8월 20일 새 앨범 ‘2020 나훈아의 <아홉 이야기>’를 발표했습니다.
 
신곡을 포함한 아홉 곡의 노래 한 곡 한 곡에 따뜻한 이야기와 삶의 해학을 담아 전한다며,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명자!', '테스형!', '딱 한 번 인생', '웬수', '감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모란동백', '엄니' 등
총 9곡을 수록했습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휘젓고
가까운 사람마저 선뜻 손 내밀지 못하게 하는 삭막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까지는 다치게 내어 줄 수 없다.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에 많은 이의 마음이 따뜻해져서 다시 한 번 힘내시길 바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2020년 9월 23일 저녁 7시 30분에 그의 인생 최초의 비대면 공연을 개최했습니다.
 
해당 공연은 9월 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전국으로 송출되면서
나훈아는 15년 만에 TV 방송에 출연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있습니다.
저는 옛날의 역사책을 보든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또 진주의 논개, 윤봉길,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IMF 때도 이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서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세계에서 제일 1등 국민입니다.

 
 
나훈아는 잘못된 루머를 퍼뜨렸던 언론사들을 매우 불신하기도 했고, 이 때문에 다시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이력도 있었으니,
그에게 있어서 큰 도전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간광고, 다시 보기 서비스를 안 하는 조건으로 
KBS 측으로부터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고 하네요.
 
 

2024년, 2025년: 은퇴

2024년 2월 27일 소속사를 통해 전국투어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LAST CONCERT)' 일정과 함께
직접 쓴 편지를 공개하며 은퇴를 시사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에는 마지막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으며 박수 칠 때 떠나겠다는 말을 따르고자 한다며
은퇴 계획을 알렸습니다.
 
이후 4월 인천, 5월 청주·울산, 6월 창원·천안·원주, 7월 전주, 10월 강릉, 11월 안동·진주·광주, 12월 대구·부산에서 공연을 열어왔습니다.
 
25년 1월 10일~12일 현재, 나훈아는 사흘간 같은 장소에서 단독 공연을 열고 있습니다.
그가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은퇴 투어 무대의 ‘마지막 개최지’로 예고해 큰 예매 경쟁이 벌어진 공연입니다.
 
 

1.10(금) 서울 송파구 KSPO돔에서, 단독공연 ‘라스트 콘서트- 고마웠습니다’를 진행하며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왜냐면 별, 스타니깐.
좋을 것 같아 보여도 저도 사람이다 보니,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이 결심입니다.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저거 색깔에 맞게, 맘대로 막 쓴 기다. 그럼 안 된다”

“이제 그만 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 캤는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 난리다.
이 얘기가 지가 지방(대구)에서 한 얘기다”

 
 

이어 그는 왼팔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니는 잘했나!”

지금 우린 누가 누구를 어떻게 하고 난리가 났는데,
느그 하는 꼬라지들이 정말 국가, 국민을 위한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

 
 
좌우로 나뉘어 서로 탓하기만 하는 정치권 분쟁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죠.
언론도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치우쳐야 옳은 이 시대에
참 용감한 발언입니다.

 
 
 
광복 60주년 기념, 아리수 공연 때, 나훈아 발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남의 나라 쳐들어오는 건 나쁜 X이야. 절대 그러면 안 돼' 이런 소리를 하기보다는,
절대 우습게 알지 못하게 우리가 강해져야 한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기 살기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있는 한은 걱정이 없다.
우리 젊은이들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계시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은 절대로 옛날처럼 지배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톺아보니,
참 굴곡 있고, 길다는 것이 인생의 본질임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더디고 힘들어도, 우리 다 함께 힘내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보아요.
여러분 모두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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