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오늘은 중국의 선진시기부터 근대시기까지 유학의 계보와 흐름을 살펴볼게요.
그 과정에서, 왜 갑자기 송대에 유학, 성리학이 다시 부흥했는지 살펴보고, 성리학과 심학 비교도 살펴볼게요.
- 선진 유학: 공자 → 맹자 → 순자
- 한대 경학 동중서 → 송대 성리학 주희 ↔ 명대 심학 왕양명
- 청대 고증학 → 근대 신유학
선진시기(春秋戰國): 유학의 탄생과 기틀
1.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년) - 유학의 창시자
- 주요 저서: 《논어》 (제자들이 공자의 언행을 기록함)
- 핵심 사상 : "인(仁)"과 "예(禮)"를 중심으로 한 인간 중심의 윤리적 삶과 사회 조화.
- 영향: 공자는 주나라의 예를 계승하며 도덕과 정치의 융합을 강조. "덕치(德治)"를 주장하며 군주의 도덕성을 강조한다.
2.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년) - 유학의 심화
- 주요 저서: 《맹자》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추측됨)
- 핵심 사상:
- "성선설(性善說)": 인간 본성은 선하며, 교육과 환경이 이를 더욱 꽃 피우게 한다.
- "민본사상(民本思想)": 백성이 국가의 근본이며, 왕은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 "왕도정치(王道政治)": 정의롭고 도덕적인 통치를 통해 사회를 다스릴 것.
- 공자와의 관계: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인간 본성과 정치에 대해 발전시킴.
3. 순자(荀子, 기원전 313~238년) - 유학의 논쟁과 확장
- 주요 저서: 《순자》 (순자 본인도 직접 쓰고, 제자들이 편찬한 것으로 추측됨)
- 핵심 사상:
- "성악설(性惡說)": 인간 본성은 악하며, 교육과 법도로서 교화하고 제어해야 한다.
- "예치(禮治)":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예와 규율이 필요하다.
- 맹자와의 관계: 맹자의 성선설과 대립하며 논쟁적 관계를 형성.
선진시기의 유학 특징
- 철학적 논의 중심, 실천 윤리 강조:
- 공자와 맹자, 순자 등의 사상가들은 도덕적 원리(仁, 義, 禮)를 강조하며 인간 본성과 정치적 윤리를 논의.
- 유학은 다른 제자백가 사상(법가, 도가 등)과 공존하며 철학적 발전을 이룸.
- 공자는 덕치(德治)를, 맹자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순자는 예치(禮治)를 주장.
선진-진한 유학 변천
- 진시황은 법가를 바탕으로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
- 유학은 현실 정치에서 배제되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통해 억압됨.
- 한 무제(漢武帝)의 유학 채택:
- 한 무제는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채택.
- "공맹 사상"과 주나라의 예(禮)를 결합한 새로운 유학 체계가 형성됨.
- 한대 유학자들은 유학의 체계화와 확산을 통해 유학을 "철학"에서 "국가 이념"으로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 담당.
- 유학의 제도화:
- 태학(太學) 설립: 유학 교육 기관으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함.
- 경서(經書)의 정립: 《오경(五經)》 중심 유학 경전 체계 확립.
*오경: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선진시기에서 진한대로 넘어가는 유학의 변천 과정은, 유학이 철학적·사상적 논의 중심에서 점차 정치와 교육 체계의 실질적 도구로 제도화되는 중요한 전환을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유학은 정치적 실용성을 강조하며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대(漢代): 유학의 제도화와 국가 철학으로의 확립
1.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년)
- 한 무제 시기의 대표적 유학자.
- 유학 독점화: "백가쟁명(百家爭鳴)을 금지하고 유학을 국가 철학으로 삼자"는 건의가 받아들여짐.
- 유학을 도덕적 정당성의 근거로 삼아 통치 체계를 강화.
- 주요 사상:
- 천인감응(天人感應):
자연(天)과 인간(人)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천명(天命)에 따라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
천재지변은 왕의 잘못된 통치를 경고하는 신호로 해석.
천(天)과 인간의 조화, 천명을 중시. - 삼강오상(三綱五常):
삼강(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妻綱)과 오상(仁, 義, 禮, 智, 信)을 통해 도덕적 질서를 제시. - 유학을 중심으로 도가와 음양오행설을 융합.
- 천인감응(天人感應):
- 역사적 성과:
- 한 무제(漢武帝)의 채택으로 유학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 됨.
- 태학(太學) 설립으로 유학 교육의 제도화.
2. 회남자(淮南子, 기원전 2세기 초)
- 유학과 도가를 융합한 학자.
- 주요 사상:
- 유학적 도덕과 도가적 자연주의를 통합하여 우주의 조화와 인간 사회의 역할을 탐구.
- 《회남자》(淮南子)는 철학, 정치, 과학 등을 아우르는 백과사전적 저서로, 유학을 다학문적으로 발전시킴.
- 영향: 유학의 융합적 성격을 강조하며, 후대 유학자들에게 사유의 폭을 넓혀줌.
3. 양웅(揚雄, 기원전 53~기원후 18년)
- 공맹 사상을 계승하며, 유학을 철학적 체계로 심화.
- 주요 사상:
- 도덕적 교육: 교육과 글쓰기를 통한 도덕적 인격 형성의 중요성을 강조.
- 철학적 저작:
- 《법언》(法言): 《논어》를 모델로 한 철학적 논의.
- 《태현》(太玄): 우주의 본질과 도덕적 삶을 논의한 철학적 저작.
4. 마융(馬融, 79~166년)
- 후한 시기의 유학자이자 주석학자.
- 주요 사상: 유학 경전에 대한 주석을 통해 《오경》의 학문적 권위를 확립.
- 영향:
- 경학(經學)의 발전과 유학 전통의 강화.
- 후대 유학자들의 경전 해석 방법론에 큰 영향을 미침.
한 무제 이후 유학 제도화 과정에서 다른 사상들의 배제
한 무제는 유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도가와 법가 등 다른 사상들을 점진적으로 배제하고 유학 중심의 통치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이 과정은 정치적, 제도적, 이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법가와의 갈등
- 배경:
- 진나라의 법가 중심 통치가 엄격한 형벌과 무자비한 정치로 인해 실패.
- 한 무제는 법가적 엄격함을 완화하고, 덕치를 중시하는 유학으로 전환.
- 배제 방식:
- 법가의 강압적 요소를 통치에서 제거하고, 유학적 도덕과 의례를 기반으로 한 통치를 도입.
- 유학을 통해 "왕도정치"와 "덕치"를 강조하며, 법가는 보조적 역할로 축소.
도가와의 갈등
- 배경:
- 도가는 자연주의와 무위자연을 중시하며 정치적 참여를 부정.
- 이는 중앙집권적 통치를 필요로 하던 한 무제의 정책과 충돌.
- 배제 방식:
- 도가 사상을 "은둔적"이고 "비실용적"으로 간주하여 국가 통치에서 배제.
- 도가는 개인적 수양이나 민간 신앙의 영역으로 한정됨.
제자백가 사상 억제
- 백가쟁명 금지:
- 동중서의 건의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을 중단하고 유학만을 통치 이념으로 채택.
- 유학 독점화:
- 한 무제는 유학 외의 사상을 국가 관리 선발 시험과 태학 교육에서 배제.
- 유학을 "정통 사상"으로 격상시키고, 나머지 사상은 비주류로 간주.
정치적 통합 도구로서의 유학
- 삼강오상(三綱五常)의 도입:
- 유학의 윤리적 원칙을 정치적 통합의 도구로 사용.
- 황제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삼강"으로 정의하여 사회 질서를 강화.
- 천인감응(天人感應)과 천명사상(天命思想):
- 통치 정당성을 유학적 천명 사상으로 설명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상의 영향력을 약화.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및 수(隋)·당(唐): 유학의 도전과 변형
- 이 시기 유학은 불교와 도교의 도전 속에서 변화를 겪음.
- 불교와의 융합, 새로운 사상적 관점의 발전이 진행됨.
위진남북조 | 정치적 쇠퇴, 철학적 논의로 축소 | 불교·도가의 도전에 대응, 철학적 융합 시도 |
수·당 | 과거제와 통치 이념으로 부활 | 불교·도가와 공존, 실용성과 도덕성 강조 |
위진남북조와 수·당시기는 중국 사상사의 전환기였습니다.
이 시기 유학은 불교와 도교의 도전 속에서 약화되었다가, 다시 통치 이념으로 부활하고 새로운 철학적 도전을 모색하게 됩니다.
위진남북조시기 유학과 그 지위
유학의 쇠퇴와 변모
- 정치적 혼란과 유학의 위축:
- 위진남북조는 국가 분열과 전란이 계속된 시기였고, 유학의 정치적 지위는 약화되었습니다.
- 유학이 국가 이념으로 활용되기보다는 학문적·철학적 논의로 축소.
- 불교와 도교의 부상:
- 불교와 도교는 혼란 속에서 개인의 구원과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며 급격히 확산.
- 유학은 이들 종교에 대응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새롭게 정의하려 했습니다.
위진 시기의 유학자
1. 왕필(王弼, 226~249)
- 현재 학계에서는 실상, 유학자라기보다는 도가학자로 분류됨.
- 주요 저서: 《주역주》(周易注)
- 사상: 유학과 도가를 융합하여 새로운 철학적 해석을 시도.
《주역》의 "무(無)" 개념을 통해 유교적 윤리를 도가의 형이상학으로 보완. - 영향: 경전의 형이상학적 해석을 시도하며 송대 성리학에 영향을 미침.
2. 하안(何晏, 190~249)
- 사상: 도가의 무위자연과 유교의 도덕적 질서를 결합.
현실 정치보다는 철학적 논의와 내면적 수양을 중시. - 영향: 철학적 유학의 전통을 발전시키며, 위진 시기의 청담(淸談) 사조에 기여.
남북조 시기의 유학자
- 불교와 도교의 지배 속에서의 유학:
- 남조에서는 불교가 철학적 우위를 점하며 유학이 학문적 위상에서 밀려남.
- 북조에서는 불교와 도교가 민간 종교로 확산되며, 유학은 통치 이념으로 부분적으로 유지.
- 유학의 학문적 재편:
- 경전에 대한 고증 작업과 주석학 발전이 이루어짐.
- 도덕적 실천보다는 학문적 탐구로 유학의 성격이 변화.
1. 범엽(范曄, 398~445)
- 주요 저서: 《후한서》(後漢書)
- 사상: 역사적 사실을 통해 유교적 도덕과 현실 정치를 연결. 역사서 저술을 통해 유학의 정치적, 도덕적 가치를 복원하려 함.
2. 유헌(劉獻, 4세기 말~5세기 초)
- 사상: 유학의 전통을 유지하며 불교의 철학적 도전에 대응. 경전 해석과 주석 작업에 힘써 유학의 학문적 체계를 강화.
수·당시기의 유학 부활과 그 지위
- 통치 이념으로의 재부상:
- 수나라와 당나라의 통일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형성되며 유학이 다시 통치 이념으로 복귀.
- 특히, 당나라에서 과거제(科擧制)가 시행되며 유학이 관료 등용의 필수 학문이 됨.
- 정치적 실용성 강조:
- 유학은 경전 학습을 통해 관료를 양성하는 도구로 기능.
- 도덕적 이상보다는 행정 실무와 정책에 초점.
1. 공영달(孔穎達, 574~648)
- 주요 저서: 《오경정의》(五經正義)
- 사상: 유학 경전의 주석과 해석을 집대성하여 국가 통치 이념으로 유학을 체계화. 정치적, 도덕적 문제 해결의 근거로 유학 경전을 활용.
- 영향: 《오경정의》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유학 교육의 표준이 됨.
2. 배유지(裴鬱之, 7세기)
- 사상: 유학적 가치를 불교와 도교의 실천적 교훈과 융합. 종교적 다원주의를 통해 유학의 도덕적 의미를 확장.
유학과 불교 및 도교와의 관계
- 불교:
- 당나라 시기 불교는 국가적으로 보호받으며 유학과 병존.
- 유학은 불교의 형이상학적 논리에 영향을 받으며 도덕과 수양의 논리를 보완.
- 그러나 유학자들은 불교의 "출세주의"를 비판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실천적 역할을 강조.
- 도가와 도교:
- 도교는 민간 신앙과 연계되어 불교와 함께 민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
- 도가의 자연주의적 철학은 유학의 자연관과 우주론 발전에 기여.
- 그러나 도교의 신비주의와 초월적 가치관은 유학자들에 의해 배척되기도 함.
한대 경학이 송대 성리학에 미친 영향
한대의 경학(經學)은 유학 경전의 해석과 주석을 통해 유학을 체계화한 학문으로, 송대 성리학의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 한대 경학: 경전 해석과 국가 통치에 초점.
- 송대 성리학: 경전 해석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적 체계와 도덕적 자아 완성에 초점.
한대 경학의 특징
- 경전의 체계화:
- 한대 유학자들은 《오경》(五經, )을 중심으로 유학 경전을 정립.
- 동중서를 비롯한 경학자들은 유교적 가치를 재해석하여 현실 정치와 윤리를 강화.
- 문자적 해석 중심:
- 경학은 경전의 문구와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제자백가 사상 중 불교와 도교와 대비되는 실용적 특징을 가짐.
- 정치적 실천 강조:
- 한 무제의 유학 채택 이후, 경학은 관료 양성과 정책 입안을 위한 지침 역할을 수행.
송대 성리학에 미친 영향
- 경전 해석의 전통 계승:
- 송대 성리학자들은 한대의 경학 전통을 기반으로 《사서》(四書,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주석을 더하며 철학적 재구성을 시도.
- 주희는 《사서집주》(四書集註)를 통해 한대 경학의 주석 전통을 발전시킴.
- 형이상학적 발전:
- 한대 경학은 경전의 현실적 의미에 집중했지만, 송대 성리학은 이를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확장.
- 예를 들어, 한대 《역경》 해석은 음양오행론에 집중되었으나, 성리학자들은 이를 우주의 본질인 "이(理)"로 연결.
- 도덕과 실천 강조:
- 한대 경학의 도덕적 실천 전통이 성리학에서 더욱 체계화됨.
- 주희는 한대 경학의 "삼강오상" 윤리를 계승하며 이를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도덕적 본성으로 연결.
- 정치적 통치 이념의 발전:
- 한대 경학이 유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정착시켰다면, 성리학은 이를 도덕적 완성의 이상으로 끌어올림.
- 성리학의 "격물치지(格物致知)"는 경학에서 강조된 정치적 실용성을 넘어선 철학적 깊이를 추구.
송·원대: 성리학(性理學)의 탄생
1. 주희(朱熹, 1130~1200년) - 성리학의 대가
- 주요 저서: 《사서집주》(四書集註), 《주자어류》(朱子語類)
- 핵심 사상:
- "이기론(理氣論)": 우주의 원리(理)와 물질(氣)의 조화.
-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혜를 얻음.
- 영향: 공맹 사상을 재해석하여 송대 유학의 체계를 완성.
2. 육구연(陸九淵, 1139~1193년) - 심학(心學)의 선구자
- 핵심 사상: "심즉리(心卽理)": 마음 자체가 우주의 이치.
- 주희와의 관계: 주희의 이기론과 대립하며 심학을 강조.
송나라 시기 유학의 부흥 - 북송 오자
송나라 시기 성리학의 부흥은 당나라 말기와 송 초기에 나타난 철학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송 오자(北宋五子)라 불리는 다섯 명의 학자(주돈이, 장재, 정호, 정이, 소옹)는 각자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켰고,
이후 주희에 의해 체계화된 성리학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들이 갑작스럽게 성리학을 강조하게 된 배경은 아래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주돈이 → 정호/정이 형제: 형이상학적 이론과 도덕적 실천을 연결.
- 소옹 → 주돈이: 우주론적 통찰을 제공하여 철학적 깊이를 확장.
- 장재 → 정호/정이: 실천적 도덕 철학을 심화.
- 정호 → 정이 → 주희: 성리학의 완성으로 이어짐.
* 소옹의 역학적 우주론과 주돈이의 태극론은 모두 우주의 통일성과 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려 합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소옹의 역학적 사유가 주돈이의 태극 사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그 근거로, 주돈이가《역경》을 해석하면서 소옹과 유사하게 음양과 오행을 설명했고,
소옹이 《황극경세서》에서 제안한 수리적 모델은 주돈이의 우주론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시대적 배경:
당말과 오대십국 시기
- 사회 혼란과 도덕적 위기:
- 당말의 정치적 혼란과 오대십국 시기의 분열로 유학이 쇠퇴하고, 불교와 도교가 강세를 보임.
- 이 시기에 형식화된 유학은 실천적 가치가 약화되어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
- 불교와 도교의 영향:
- 불교의 이론적 심화(특히 화엄종과 선종)와 도교의 신비주의가 유학자들에게 큰 도전이 됨.
- 유학자들은 유학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불교와 도교에 대응할 철학적 체계를 모색함.
북송 초기
- 중앙집권적 통치와 유학의 필요성:
- 송나라의 태조와 태종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고, 안정적 통치를 위한 이념적 기반으로 유학을 필요로 함.
- 실용적 유학의 부활:
- 학자들은 유학의 형식성을 넘어 현실과 접목된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려 했음.
북송 오자의 성리학 기틀 구축
1. 주돈이(周敦頤, 1017~1073)
- 주요 저서: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
- 사상 핵심:
- "태극(太極)"을 만물의 중심으로 우주의 근원을 설명.
- 태극에서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생성되고, 만물이 생성된다고 봄.
- 도교와 불교의 사상을 유학의 관점에서 흡수하고 재해석.
- 영향: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성숙과 사회적 조화를 위한 기반으로 해석됨.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제공. 정호와 정이에게 철학적 영감을 줌. - 관계: 후배 학자들에게 "유학적 형이상학"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침.
2. 장재(張載, 1020~1077)
- 주요 저서: 《정몽(正蒙)》, 《서명(西銘)》
- 사상 핵심:
- "기(氣)"를 중심으로 우주와 인간을 설명.
- 만물은 기(氣)의 응결과 해체로 이루어진다고 주장.
- "호연지기(浩然之氣)"와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실천을 강조.
- 영향: 실천적 도덕 철학의 기틀을 마련. 유교적 세계관을 물질과 연결하여 구체화.
- 관계: 주돈이의 사상을 발전시켜 기론적 관점을 심화. 정호, 정이 형제에게 깊은 영향을 줌.
3. 정호(程顥, 1032~1085)
- 주요 저서: 《이천문집(二程文集)》
- 사상 핵심:
-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을 구분하여 도덕적 마음의 역할을 강조.
- 인간의 도덕적 본성인 "성(性)"과 우주의 이치를 연결.
- 영향: 도덕적 자각과 자기 성찰을 통해 이상적 인간을 추구. 정이는 그의 철학을 이어받아 체계화.
- 관계: 정이와 함께 이(理)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킴.
4. 정이(程頤, 1033~1107)
- 주요 저서: 《이천문집(二程文集)》
- 사상 핵심:
- "이(理)"를 우주와 인간의 근본 원리로 삼음.
- 만물은 이(理)에 의해 질서를 유지하며, 인간의 도덕적 삶도 이(理)에 의해 완성.
- "존양성찰(存養省察)": 도덕적 자아를 보존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
- 영향: 주희의 이기론에 직접적인 토대를 제공. 성리학의 체계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
- 관계: 형 정호의 사상을 이어받아 심화.
5. 소옹(邵雍, 1011~1077)
- 주요 저서: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 사상 핵심:
- 우주론과 수리학(數理學)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설명.
- 역학(易學) 원리를 통해 우주의 순환과 인간 사회의 변화를 수리적으로 설명.
- "상수(象數)"와 "역학"에 기반한 철학은 사물의 본질과 변화의 법칙을 탐구.
- 영향: 성리학의 우주론적 기초를 제공. 주희와 후대 학자들에게 형이상학적 통찰력을 제시.
소옹의 철학은 우주의 구조와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도덕적 실천보다 자연적·수리적 원리에 더 중점을 둠. - 관계: 주돈이와 함께 송대 유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
왜 성리학을 강조했는가?
불교와 도교의 도전
- 당말과 송초에 불교와 도교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
- 불교의 심오한 형이상학과 도교의 자연주의적 철학에 대응하기 위해 유학자들은 "형이상학적 유학"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낌.
사회적 요구
- 송나라 정부는 안정된 통치를 위해 도덕적 기반이 필요.
- 실용적이고 윤리적 기반을 가진 유학의 부흥이 절실.
철학적 체계의 필요성
- 당나라 말기 유학의 형식화와 쇠퇴에 대한 반발로 학자들은 내면적 성찰과 형이상학적 탐구를 통해 유학의 본질을 복원하고자 함.
명·청대: 심학의 발전과 동서양 교류
1. 왕양명(王陽明, 1472~1529년) - 심학의 집대성
- 주요 저서: 《전습록》(傳習錄)
- 핵심 사상:
- "치양지(致良知)": 각자의 내면에서 진리를 찾고 이를 실천.
- "지행합일(知行合一)": 앎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다.
- 영향: 후대 일본과 동아시아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침.
2. 고증학의 대두(18~19세기)
- 명말 청초의 고증학은 텍스트 분석과 학문적 고증을 강조하며 성리학에 도전.
근대(19~20세기 초): 유학의 쇠퇴와 변혁
- 근대 서양 사상의 유입과 청말의 위기 속에서 유학은 쇠퇴.
- 개화파와 신유학자들이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시도.
양계초(梁啓超), 담사동(譚嗣同) 등
- 전통 유학과 근대화 사상을 결합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
성리학(性理學)과 심학(心學) 비교
송대부터 명대 초까지 동아시아 사상의 주류로 자리 잡은 성리학은 유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학문적 권위를 높였으며,
관료적, 제도적 유학으로 발전되어, 교육과 관리 양성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론적 도구 제공했습니다.
명대 중후기에 관료적 성리학의 형식화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심학은 개인의 도덕적 자각과 실천에 중점을 두고,
관료주의나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서도 긍정적으로 수용되며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했을 만큼, "개인의 혁신"을 통한 사회적 변화를 강조했어요.
- 성리학: "과학적인 탐구"를 통해 우주와 삶의 이치를 발견하려는 접근. 외부 세계에서 해답을 찾으려 함.
- 심학: "명상과 자기 성찰"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방식. 내면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이를 실천하려 함.
주요 인물 | 주희(朱熹) | 왕양명(王陽明) |
핵심 개념 | 이(理)와 기(氣)의 조화 |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
방법론 | 이론적 탐구, 격물치지 | 내면적 깨달음, 실천 강조 |
사회적 영향 | 제도화된 유학, 관료 양성 | 개인 혁신 강조, 형식주의 비판 |
- 성리학(주희 중심): 사물의 이치를 먼저 탐구(격물)해야 참된 도덕성에 도달할 수 있다.
- 방법론
이론적이고 탐구적인 접근을 중시.
사물과 자연의 이치를 관찰하고 연구하여 도덕적 진리를 터득.
예컨대, 책을 읽거나 토론하며 논리적으로 이치를 깨달음. - 이기론(理氣論):
- "이(理)"는 모든 사물의 본질적 원리이자 규범.
- "기(氣)"는 물질적 요소로, 현실 세계에서 이(理)를 구현하는 매개체.
- 이와 기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주와 인간을 설명.
- 격물치지(格物致知):
-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여 지식을 얻고 도덕적 완성에 도달함.
- 방법론
- 심학(왕양명 중심): 사물의 이치를 찾기 전에 이미 내면에 답이 있다(치양지).
- 방법론
내면적이고 직관적인 깨달음을 중시. 자신의 양심과 본성을 탐구하여 진리를 체득.
행위(실천)를 통해 도덕적 깨달음을 강화. - 심즉리(心卽理):
- "마음(心)" 그 자체가 우주의 본질적 원리(理)임.
- 외부에서 진리를 찾는 대신, 내면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함.
- 치양지(致良知):
- "양지(良知)"란 인간 내면에 선천적으로 내재된 도덕적 직관.
- 이를 실천하여 올바른 삶을 살 것.
- 지행합일(知行合一):
- 앎(知)과 행동(行)은 분리될 수 없으며, 지식은 행동을 통해 완성됨.
- 방법론
아주 개략적으로 살펴봤네요.
앞으로 뼈대에 살을 붙여볼게요.
유학을 이해한다면, 고대 동양인들의 사유 방식을, 세계관계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세상만사는 돌고 도니, 알아두면 좋겠죠.
심학의 대표주자인 왕양명과 그 사상에 대한 포스팅 참고하세요:)
2024.12.10 - [공부와 서적] - 왕수인: 왕양명 인물 탐색-심학, 심즉리, 치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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