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오늘은 서해 수호의 날입니다.
서해 수호의 날을 맞아, 그날의 의미를 알아볼게요.
서해 수호의 날 소개
박근혜 정부인 2016년에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날짜는 3월의 넷째 금요일입니다.
이 날짜로 한 것은 가장 희생이 컸던 천안함 피격이 일어난 2010년 3월 26일이 3월의 네 번째 금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정 원인
제2연평해전(2002.6.29), 천안함 피격사건(2010.3.26), 연평도 포격전(2010.11.23) 등 북한의 서해 도발에 맞서 생명을 바친 55명의 호국영웅들과 참전 장병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지정됐습니다.
55명: 제2연평해전(6명), 천안함 피격사건(47명), 연평도 포격전(2명)
기념 행사
국가보훈부가 주관하여 정부기념식이 치러집니다.
한미 국방당국은 이날을 기념하며 대규모 기동합동훈련을 실시하며, 전국에서 안보결의대회가 열립니다.
특히 서해와 근접해 있는 전라북도와 인천 지역에서 활발히 행사가 주최됩니다.
25년 3. 28일, 제10회 기념행사
28일 오전 10시 국립대전현충원,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진행합니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이 기념식은 서해수호 55 영웅의 유가족 및 참전 장병, 정부 주요 인사, 군 주요 직위자, 시민, 학생 등 1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입니다.
올해 기념식은 '서해를 지켜낸 영웅들, 영원히 기억될 이름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됩니다.
연평해전(延坪海戰)
연평해전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2차례에 걸쳐 북방한계선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입니다.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고, 어선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침범 및 철수를 반복하던 중 발생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북한 함정을 격침시키지 못한 것은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라고 정부와 군을 비판하면서 제2 연평해전에 대해 '패전', '완패'라고 폄훼했습니다.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가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 전투를 ‘제2 연평해전’으로 격상해 명명하고,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 주관하에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은 제2 연평해전을 ‘승전’으로 공식 규정했습니다.
1차, 2차 경과
1차:
북한 경비정 7척이 침범해 사격하면서 교전이 이뤄졌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고속정 5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으며,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5척을 파손시켰습니다.
6월 7일부터 14일까지 북한 경비정이 어선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하면서 침범 및 철수를 반복하였습니다.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은 계속되던 중, 6월 15일 오전 8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7척이 대한민국 해군 고속정에 접근하여 충돌공격을 실시하고, 이에 맞대응하여 대한민국 해군도 충돌공격을 가하였습니다.
양측 간에 혼전이 벌어지던 중 오전 9시 28분 북한 함정이 먼저 사격을 가해옴에 따라, 대한민국 해군은 자위권 차원에서 즉각 대응사격을 가하며, 교전은 오전 9시 42분까지 14분간 진행되었습니다.
2차: 3년 뒤 일어났습니다.
북한의 기습 사격으로 시작되어, 북한의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를 반파시키며 종결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속정 1척이 침몰하고 전사자 6명, 부상자 18명이 발생했습니다.
2002년 6월 29일, 2002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북한은 다시 한번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무력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이날 오전 9시 54분부터 북방한계선을 넘기 시작한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하였고, 대한민국 해군도 참수리 357호와 358호가 대응사격을 개시하는 한편, 인근의 제천 · 진해함(PCC)과 참수리급 경비정 4척을 투입해 격파사격을 실시하였습니다.
교전은 오전 10시 56분까지 31분간 진행된 후, 기습 공격을 받은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되고, 해군은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북한은 약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SO · 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로 퇴각함으로써 종결되었습니다.
원인: 명시적 합의가 없는 해상경계선
1951년 11월, 군사분계선 설정 당시, 육상경계선에 대한 양측 합의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동서 해안의 해상경계선에 대해서는 남북한 사이에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습니다.
유엔군은 서해상에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영해 기준 3해리를 고려하고 연평도 · 백령도 등 5개 도서와 북한 지역과 개략적인 중간선을 기준으로 북방한계선을 설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이를 유엔군의 일방적 조치라며 그 효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전후에 해상에서 긴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6명의 전사자
헌법 29조 2항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군인이 사망할 경우 군인연금법에 의해 보상을 받는데, 오직 공무상 순직만 존재하고, 제2 연평해전 당시까지 군인연금법에는 '전사' 규정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전사자에 대해서는 몇 천만 원에 불과한 보상금만 지급되었습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해군의 천안함(PCC-772, 포항급 초계함(PCC) 14번함)이 북방한계선(NLL) 해상 초계임무 수행 도중 북한 조선인민군 해군의 연어급 잠수정의 어뢰에 공격당해 선체가 반파되며 침몰한 사건입니다.
피격 이후 인근 지역에서 경계작전 중이던 속초함(PCC-778)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PKM),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이 중 6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하여 인정사망 처리되었습니다)
구조 작업 중 숨진 1명을 포함해, 총 47명입니다.
그런데, 당시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논의하고 있었기에, 초기부터 해군은 어뢰 피격이라고 판단하였지만, 청와대는 파도에 부러졌다는 등 계속하여 어뢰 피격을 부정하며,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사고 원인에 대해 선체노후화에 따른 피로파괴설이나 외부의 공격, 암초로 인한 좌초 등이 원인이라는 설이 떠돌았습니다.
또한, 진보 계열 언론사들은 북한 어뢰설을 부정하고 맹목적으로 북한 감싸주기에 급급 했습니다.
5월 20일,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는 침몰 당시 북한과 관계없다고 발표하였지만, 이후 그 원인에 대해 민군합동조사단 및 국제조사단의 조사를 거쳐 '북한군 연어급 잠수함의 어뢰 공격'임을 확인하고 북한을 규탄하였습니다.
당시 은밀한 공격이 가능한 북한 잠수정이 남한의 바다에 침투해 그 결과 어뢰 공격을 당해 침몰했기 때문입니다.
46+1, 47명의 전사자
천안함(PCC-772)은 제1 연평해전에 참전했던 함정이기도 하며,
실종·사망한 승조원 46명 중에는 제2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357정(PKM-357)에 승조하여 전투에 참전해 부상을 입었던 박경수 중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
연평도 포격전(延坪島 砲擊戰)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0분경, 북한이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대연평도를 향해 포격하자, 대한민국 해병대가 피격 직후 북한의 영토를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입니다.
천안함 피격 사건에 이어 8개월 만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부상자 16명,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부상자 3명, 도합 사망자 4명과 부상자 1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연평도의 각종 시설 및 가옥이 파괴되어 재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 전쟁의 휴전 협정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의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에 국제 사회는 북한을 규탄했으나, 북한은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었으며 전적인 책임은 대한민국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0년 11월 23일 8시 20분, 북한은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 영해에 대한 포 사격이 이루어질 경우 즉각적인 물리적 조치를 경고한다."는 통지문을 발송했으나,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훈련중단 요청을 거절하고, 예정대로 훈련을 진행했습니다.
10시 15분부터 14시 24분까지 4시간 동안, 연평도 주둔 해병대가 3,657발의 사격 훈련을 했고,
연평도 해병대의 포격 훈련이 종료된 지 10분 후인 14시 34분,
북한 조선인민군은 연평도 군부대 및 인근 민가를 향해 개머리 해안부근 해안포기지로부터 무차별 포격을 시작하였습니다.
명칭 변경: '연평도 포격 도발'과 '연평도 포격전'
2010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 도발'로 규정했습니다.
2021년 3월 31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해병대와 전사자 유족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건의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습니다.
해병대 관계자에 따르면, “연평도 포격 도발이란 명칭은 그 주체가 북한인 데다 우리 군의 적극적인 대응을 담아내지 못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 아닌 연평도 전투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라고 합니다.
2명의 전사자
역대 대통령 목록
노무현: 2003.2-2008.2
이명박: 2008.2-2013.2
박근혜: 2013.2-2016.12
문재인: 2017.2-2022.2
윤석열: 2022.2-
북한의 소행 여부와 무관하게, 희생된 자들은 추모해야 합니다.
희생의 원인을 밝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가는 국가를 지키는 군인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지도부는 각자의 잇속 다툼만 지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다양성은 존중해야 하지만,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현재를 함께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상'에 대한 방향은 제시돼야 합니다.
다음은 국가보훈부에서 발표한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28일 대전현충원 보도자료입니다.
희생된 군인과 민간인 2명을 기리고,
부상자들도 잊지 않고, 그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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