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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서적

樊巖先生集: 송김지규환기성시서(送金之奎還箕城詩序)

by 사업하는 철학자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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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오늘은 번암선생집 33권(樊巖先生集卷之三十三)에 있는 일부 내용을 살펴볼게요.

 

먼저, 번암선생집(樊巖先生集)과 채제공을 소개할게요.

<번암선생집>은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시문집(詩文集) 초고본입니다.

총 62권 30책 가운데, 

현재는 표지의 우측 상단에 ‘권수(卷首)’라고 표기된 제1책을 포함하여 27권 22책만 전해집니다.

 

 

 

조선 후기 내내 탄압받던 남인 중에서는 최고이자 최후의 거물 정치가였던

채제공정조대 초대 화성유수를 지내고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1793.7.2~7.11)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사도세자 추숭, 현륭원 조성, 수원읍치 이전, 수원화성 성역 등 정조가 추진하는 주요 사업을 맡아 수행한 인물이에요.

1799년(정조 24) 1월에 채제공이 세상을 떠나자

그해 가을, 정약용(丁若鏞) 이가환(李家煥) 등이 유고를 교정하였습니다.

 

이듬해 정조가 채제공의 문집 편집과 간행에 직접 범례(凡例)를 지어 주며

문집 편집 기준을 설정해 주었습니다.

표지 안쪽 면에 『번암선생집(樊巖先生集)』 보면, 

구본(舊本)을 정조가 정해 준 범례대로 다시 편집하고, 3본을 베껴 서울, 영남, 충청도에 보내니

더 이상 내용을 바꾸지 말고 이 책을 기준으로 간행할 것을 당부하는 별지(別紙)가 붙어 있습니다.

 

送金之奎還箕城詩序

채제공(蔡濟恭) 기성으로 돌아가는 김지규를 배웅하는 시의 서문

 

余避人, 以竹州之不寐軒爲畏壘菴, 殆半載矣。

내가 사람을 피해 죽주(竹州)의 불매헌(不寐軒)을 외루암(畏壘菴)으로 삼은 지 거의 반년이 되었다. 

 

金君之奎, 自關西而京, 自京而竹。

김군(金君) 지규(之奎)가 관서(關西)에서 경사(京師)로 와서 경사에서 죽주로 왔다. 

 

踰洞仙嶺涉漢江, 若履閾然, 其意在乎余也。

동선령(洞仙嶺)을 넘고 한강(漢江)을 건너기를, 마치 문지방을 밟고 오듯이 했으니, 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蓬藋跫然猶可喜, 况故舊之不以翟公門爲可棄者乎。

깊은 산골에서는 사람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반가운데, 더구나 적공(翟公)의 문하를 버릴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벗이 찾아왔으니 어떠하겠는가.

 

與之陟高巘, 松聲淅瀝也。

함께 높은 언덕을 오르니 솔바람 소리가 쏴 일어난다.

 

與之步前堤, 雪月皎如也。

함께 앞 제방을 걸으니 눈 속의 달이 환히 비추었다.

 

倦而倚枕, 則九疇井田之遺蹟, 及西京土俗風謠民疾苦, 無不羅列而陳之。

곤해져서 베개를 베고 누우면, (김군이) 구주(九疇)와 정전(井田)의 유적, 서경(西京: 평양(平壤))의 풍속과 민요, 백성의 질고(疾苦) 등을, 늘어놓으며 알려 주지 않음이 없다.

 

孰使余忘離索之恨者非君也歟!

나로 하여금 홀로 외로이 지내는 한(恨)을 잊게 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군이 아니겠는가.

 

旣信旣宿, 言告其歸。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하룻밤을 지낸 뒤에, (김군이)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余何可以西湖吟詩之戒, 不一言以別乎!

내가 어찌 서호(西湖)에서 시를 읊지 말라는 경계 때문에, 한마디 말로써 (군에게) 작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君歸卧觀潮軒, 默究余命軒之義, 時或誦余之詩, 其必犂然有契矣。

군이 돌아가 관조헌(觀潮軒)에 누워 내가 ‘관조헌’이라고 이름 붙인 의미를 묵묵히 숙고해 보고, 때로는 내가 지어 준 시를 읊어 본다면, 필시 군의 마음에 딱 합치되는 점이 있을 것이다.

 

詩曰。

시는 다음과 같다.

 

雲雪一千里。君來何太艱。高風灌仲孺。落日九峯山。 客夜無衾宿。寒天躡屩還。柴門大同上。潮信日相關。 

 

구름 끼고 눈 덮인 천 리 길을 / 雲雪一千里

그대는 어찌 그리 힘들게 왔나 / 君來何太艱

기개 높은 풍모는 관중유(灌仲孺)인데 / 高風灌仲孺

구봉산 너머로 해는 기우네 / 落日九峯山

객지 잠자리엔 변변한 이불도 없고 / 客夜無衾宿

날 추운데 짚신 신고 돌아가겠지 / 寒天躡屩還

그대 초가집이 대동강 가이니 / 柴門大同上

조수와 날마다 서로 사귀어 보게 / 潮信日相關


 

*적공(翟公):

한(漢) 나라 때 하규(下邽)의 정리(廷吏, 법정에서 법관(法官)이 명하는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적공과 관련된 유명한 고사성어가 있다.

문전나작門前羅雀:

처음 정리로 있을 때 손님이 매우 많아 문지방이 닳았는데, 그 자리에서 물러나자 문에 거미줄이 슬어 새를 잡는 그물을 친 듯했다. 

 

사기(史記) 급정전(汲鄭傳)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가 다시 정리가 되자, 또 손님들이 들끓자,

세상 인정의 경박함을 말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문에 크게 방을 붙였다.[적공서문翟公書門]

 

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

(일사일생내지교정 일빈일부내지교태 일귀일천교정내견)

죽은 뒤에야 그 참다운 사귐을 알아볼 수 있고,

가난해져 보아야 부자로 살 때의 참된 태도를 알 수 있으며,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되는 그 속에서 사귄 정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된다.

 

 

*관중유(灌仲孺)

전한 영천(潁川) 영음(潁陰) 사람 관부(灌夫)의 자가 중유(仲孺)다.

아버지는 장맹(張孟)인데, 관영(灌嬰)의 사인(舍人)이 되어 총애를 받아 성을 관씨로 바꾸었다.

 

오초(吳楚)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아버지가 원정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관부도 함께 종군했었는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초상을 치르기 위해 귀향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오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적병 수십 명을 죽여 이름을 천하에 떨쳤고, 이 공으로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술을 좋아하고 용감했다. 식객(食客)이 날마다 수백 명에 이르렀다. 

 

 

 

 

이번 주는 눈 또는 비가 온다고 합니다.

모두 건강하고 편안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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