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오늘은 한국문집 중, 목은 이색의 글, 유사정기 원문과 번역 살펴볼게요.
이색(1328.6-1396.6)은 고려 후기의 문인입니다.
사대부의 아버지 그리고,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와 더불어 고려삼은(隱)이라 불립니다.
*고려삼은:
여말삼은(麗末三隱)이라 하기도 한다.
고려 말기에 절의를 지켰으며, 호가 은(隱)으로 끝나는 세 학자를 일컫는다.
목은(牧隱) 이색, 포은(圃隱) 정몽주, 야은(冶隱) 길재를 일컫는데,
야은 길재 대신, 도은(陶隱) 이숭인을 넣기도 한다.
익재 이제현 밑에서 공부했으며 성리학을 연구했고
문하에 정몽주, 정도전, 이숭인, 남재, 권근, 길재, 이첨, 하륜, 윤소종, 염흥방 등
사실상 고려 말 조선 초,
거의 모든 사대부들을 키워 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자신의 제자인 권근, 정몽주, 길재 등을 통하여 후일 관학파와 사림파가 형성되었기에 신진사대부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목은문고(牧隱文藁)는 이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404년에 간행한 시문집입니다.
유사정기는
경상북도 영해부 곧, 현재 울진군 평해읍에 있었던 유사정(流沙亭)이란 정자에 붙인 기문(記文)입니다.
유사정, 모래사장 정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아마도 백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
바닷물에 휩쓸려 다니는 모래사장을 흔히 유사(流沙)라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글은 영해의 관아 동쪽 바닷가에 위치한 유사정(流沙亭)이란 정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 정자는 평해에 있는 월송정, 관어대와 더불어 고려 때부터 이름이 있는 정자였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는 잘 보존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축년(1361, 공민왕 10년)에 홍건적이 고려로 침입해 들어와 개경까지 함락시켰을 때,
공민왕이 안동 지역으로 피란하였는데,
목은이 왕과 함께 이 지역에 왔다가 외가가 있는 영해를 방문하였습니다.
외가 쪽 친척으로 추측되는 형의 청탁으로 이 글을 짓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목은의 아버지 가정(稼亭) 이곡(李穀)이
영해 사람인 김택(金澤)의 딸에게 장가들었기 때문에 목은은 외가에서 태어났고,
그래서인지, 목은은 관어대부(觀魚臺賦)와 같은 영해를 묘사한 작품을 지었습니다.
이 글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이색(李穡), 〈유사정기(流沙亭記)〉, 《목은문고(牧隱文藁)》
流沙, 禹貢所載, 聲敎所被者也。
유사(流沙)는 〈우공(禹貢)〉에도 실려 있는 바, 성인의 교화가 미친 지역이다.
然以名亭, 則吾莫得而知之矣。
그렇지만 유사라는 땅으로 정자의 이름을 삼는 이유를 나는 아무리 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古之人, 扁其游燕居息之地, 固有託之名山水。
옛날 어른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편안히 쉬는 곳에 편액을 걸 때에는, 이름난 산수를 빌려다 이름을 붙였다.
或揭大美大惡, 寓勸戒意。
그렇지 않으면 아주 아름다운 일이나 아주 악독한 일을 걸어서,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의중을 밝혔다.
或就其先代鄕里, 以志不忘本。
그마저도 아니라면 선대(先代)의 향리를 가져다 씀으로써,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뜻을 표시하였다.
若遼絶之域, 卑惡之鄕。
(유사는) 저 까마득히 먼 지역이나 질이 좋지 않은 나쁜 마을이다.
中國人物之所不出, 舟車之所不至。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지도 않고, 배와 수레가 통하지도 않는다.
如流沙者, 人且厭道而羞稱之。
예컨대 유사(流沙)와 같은 곳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일컫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한다.
矧肯大書特書, 載之戶牖間哉!
그런데 그 위에 대서특필하여, 문이나 창 사이에 걸어놓으려는 꿈이나 꾸겠는가!
予知, 吾兄措意, 必有出人者矣。
그러니 우리 형께서 이것을 정자 이름으로 쓰려는 데에는, 반드시 평범한 사람의 의중을 벗어난 뜻이 있을 것임을 알겠다.
天下之大聖人之化, 與之無窮, 此猶外也。
천하가 아무리 크더라도 성인의 교화는 천하와 함께 무궁하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히려 겉에서 본 것이다.
人身之小, 天下之大, 與之相同。此其內也。
인간의 몸이 아무리 작더라도 이 광대한 천하는 그 몸과 함께 하나로 어울린다. 이것은 안으로부터 본 것이다.
自其外者觀之, 東極扶桑, 西極崑崙, 北不毛, 南不雪。
천하를 겉으로 보면, 동쪽 끝으로는 해가 뜨는 부상(扶桑)에 닿고, 서쪽 끝으로는 곤륜산에 닿으며, 북쪽은 초목이 나지 않고, 남쪽은 눈이 내리지 않는다.
聖人之化, 漸之被之曁之也。
이런 지역까지도 성인의 교화가 적시고 뒤덮고 영향을 미쳤다.
然混一常少, 而分裂常多。固不能不慨然於予心焉。
그러나 천하가 하나로 통일된 때는 늘 적었고 분열된 때는 항상 많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마음속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自其內者觀之, 筋骸之束, 情性之微。而心處其中。
인간을 안으로부터 살펴보면, 힘줄과 뼈가 묶여 있고 성정(性情)이 약하게 작용하는 중에 마음이 그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包括宇宙, 酬酢事物。
(하지만 그 마음은) 우주를 감싸 안고 있으며, 현상과 사물을 접하여 대응하고 있다.
威武不能離, 智力不能沮, 巍然我一人也。
위세와 무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간교한 꾀와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로서, 우뚝하게 서있는 것이 바로 나 한 사람이다.
則雖潛伏幽蟄於一偏之極。
그렇다면 비록 천하의 한쪽 끝 치우친 곳에 잠겨 가만히 엎드려 숨을 죽이고 숨어 있다고 해도,
而其胸次度量, 則聖化所被, 四方之遠, 無得而外之也。
그의 흉금과 도량은 성인의 교화가 미치는 천하 사방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이 마음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兄之志其亦若是乎。
형의 생각이 아무래도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予嘗有志四方之游, 今已倦矣。
나는 일찍부터 천하 사방을 두루 노닐려는 뜻을 가졌으나, 이제는 벌써 지쳐버렸다.
辛丑冬。避兵而東, 始得至寧海府。
신축년 겨울 병란을 피해서 동쪽으로 갔을 때 비로소 영해부(寧海府)에 이르렀다.
是吾外家, 而吾兄居之。
이곳은 바로 우리 외가로서 우리 형이 살고 있다.
寧海東臨大海, 與日本爲隣。實吾東國之極東也。
영해는 동쪽으로 큰 바다에 닿아서, 일본과 이웃하고 있다. 참으로 우리나라의 동쪽 끝이라고 할 수 있다.
今吾幸得至一隅, 以極其極, 他可及也。
지금 내가 요행히 영해의 한 모퉁이에 이르렀으니, (천하의) 끝 중에서도 끝에 있는 셈이라, 이제 다른 곳으로 돌아가도 되겠다.
矧流沙相對之地哉?
더욱이 유사정(流沙亭)과 마주한 땅이야 말해 무엇 하랴?
擧酒其上, 就索爲記。欣然書之。
정자 위에서 술잔을 들고 있는데 기문을 써주기를 청하므로, 기쁜 마음으로 쓴다.
至正壬寅。
지정(至正) 임인년(1362).
이 글을 번역한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유사정기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목은은 유사가 단지 모래사장이 아닌,
《서경(書經)》의 〈우공(禹貢)〉에서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지명을 가져다 정자 이름을 삼았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유사는 중국 강역의 서쪽 끝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을 상징해 왔습니다.
+) 원문 근거: 若遼絶之域, 卑惡之鄕。中國人物之所不出, 舟車之所不至。如流沙者, 人且厭道而羞稱之。
(유사는) 저 까마득히 먼 지역이나 질이 좋지 않은 나쁜 마을이다.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지도 않고, 배와 수레가 통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유사(流沙)와 같은 곳은,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일컫는 것조차도 부끄러워한다.
천하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라도 성인의 교화가 미치고,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원대한 꿈을 가진다면
유사와 같은 불모의 땅에 사는 사람이라도 세계의 중심과 소통할 수 있다는 꿈을
목은은 동해 바닷가 정자에서 꿈꾸었습니다.
+) 원문 근거: 包括宇宙, 酬酢事物。威武不能離, 智力不能沮, 巍然我一人也。
(하지만 그 마음은) 우주를 감싸 안고 있으며, 현상과 사물을 접하여 대응하고 있다. 위세와 무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간교한 꾀와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로서, 우뚝하게 서있는 것이 바로 나 한 사람이다.
목은이 몽골이 세계를 통일한 상태를 무척 의의가 있다고 여겼다고 평가합니다.
세계인으로 살고 싶었으며,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평화를 유지하며 사는 것을 꿈꾸었던 듯하다고 평가됩니다.
+) 원문 근거: 天下之大聖人之化, 與之無窮, 此猶外也。人身之小, 天下之大, 與之相同。此其內也。
천하가 아무리 크더라도 성인의 교화는 천하와 함께 무궁하게 전개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오히려 겉에서 본 것이다. 인간의 몸이 아무리 작더라도 이 광대한 천하는 그 몸과 함께 하나로 어울린다. 이것은 안으로부터 본 것이다.
그런 의식을 가졌고 또 국난에 처했기에,
유사정에서 목은은 지금은 외진 변방에 살지만
언젠가는 중심에 서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은 미약하지만
“우주를 감싸 안고 있으며, 현상과 사물을 접하여 대응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이 작용할 때 “위세와 무력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간교한 꾀와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로서
우뚝하게 서있는 것이 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구한말에 소려(小黎)는 이 글을 보고서
“흉금과 국량이 천하만큼이나 광대하다(胸襟宇量, 同其廣大.)”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한 인간이 천하를 상대로 우뚝하게 서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의지를 발견하고서 내린 평이라고 글쓴이는 생각했습니다.
위의 글과 번역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www.itkc.or.kr/bbs/boardView.do?id=75&bIdx=31477&page=2&menuId=127&bc=0
눈이 와서 아름답지만, 미끄러운 오늘입니다. 모두 안전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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