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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서적

동양고전: 『노자』 기초 지식 - 판본

by 사업하는 철학자 2024.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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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앞으로 제 전공인 동양고전에 대한 이모저모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그 시작은 『노자』입니다.

 

1. 노자는 누구고, 『노자』는 뭔가?

 

노자는 춘추시대의 사상가이자 제자백가의 시초 격인 인물로, 도가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당대 최초로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바,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도교에서는 신격화하여 태상노군이라고 부릅니다.

 

노자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매우 부족합니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기록인 사마천 사기 '신한노장열전'에 따르면, 노자 본명은 이이(李耳), 는 담(聃)입니다.

노자는 초나라 출신으로 주나라에서 문서 기록 담당자인 사관(史官)이었으며, 

공자가 주에서 잠깐 머무를 때 노자에게 배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도 합니다. 

 

중국의 설화집인 《태평광기》에 따르면 본명은 이중이(李重耳)고, 자는 백양(伯陽)으로 초나라 고현 곡인리 사람이라고도 전해집니다.

노자(老子)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후 선천태후의 뱃속에서 70년을 태아 상태로 있다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옆 오얏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를 나의 성씨로 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이 오얏나무 '李'(리)가 되고, 이후에 성장하면서 귀가 컸기 때문에 이름은 '耳(귀 이)'자가 되었다. 

 

 

 『노자』는 약5000자로, 짧은 글입니다. 

 『도덕경』이라고 불리며, 총 81장 가운데, 37장은 도경, 44장은 덕경입니다.

통용되는 통용본에서는 도경-덕경 순서로, 각각 상경과 하경이라고 하는데요.

백서본에서는 순서가 뒤짚혀져 있습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판본은 왕필본, 하상공본, 부혁본, 죽간본 등이 있습니다.

시대별 해석과 사상적 배경에 따라 그 내용과 해석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2. 『노자』 판본 5가지

 

과학에서 수치, 사회학에서 정확한 통계가 중요하듯, 책을 읽을 때 출처가 중요하죠.

『노자』라고 모든 글자, 내용이 같지 않습니다.

 

1. 왕필본(王弼本)

출현 시기: 약 3세기 (삼국시대 말기 위진남북조 시대)  

주석자: 위나라 왕필, 18세인 243년

주요 특징: 
- 왕필은 위(魏) 나라의 사상가로서, 도덕경의 사상적 해석을 새롭게 제시한 인물입니다.
- 도덕경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철학서로 간주하였으며, 공(空)과 무위(無爲) 개념을 중심으로 노자의 사상을 정리하였습니다.
- 유학적인 영향을 반영하여, 도가의 사상을 상대적으로 체계화하고 세속적 가치와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왕필은 단순한 주석을 넘어 노자의 철학적 가르침을 일관되게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며, 이러한 해석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가장 많이 통용돼 통용본라고 불립니다.

- 하상공본과 비교했을 때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더 강조하고, 기존의 신비주의적 요소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 도의 개념을 ‘무위자연’의 철학적 개념으로 재해석하면서 노자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특징이 있습니다.


2. 하상공본(河上公本)

출현 시기: 한나라 시대 (한(汉) 나라 문제(文帝) 때,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주석자: 한문제의 벼슬을 거정하고 하상(河上)에 살았다는 도인
주요 특징:
- 하상공본은 한대 초기의 노자 주석서로, 중국의 전통적 신앙과 신화적 요소를 결합하여 노자의 사상을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 노자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삼고, 도교적 수행과 영생을 얻는 방법으로 연결시키는 주석이 특징적입니다.
- 신비주의적이고 신앙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으며, 도를 일종의 신성한 힘으로 보아 이를 통해 영원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왕필본에 비해 신앙적인 접근이 강하며, 도와 덕을 통한 실천적 수행을 중시합니다.
- 형이하학적이며, 실천적 수행과 도교 의례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3. 부혁본(傅奕本)

출현 시기: 당나라 시대 (7세기)  

주석자: 도사 부혁
주요 특징:
- 부혁본은 당나라 초기의 사상가인 부혁이 편찬한 주석본으로,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배경을 반영한 해석을 지니고 있습니다.
- 도덕경을 유교적 가치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보이며, 통치와 윤리에 대한 해석을 추가하여 국가적 통치 원리로 삼고자 했습니다.
- 노자의 도덕경이 내포하는 정치적 가치와 실천적 의미를 중시하는 것이 부혁본의 특징입니다.

- 노자의 사상을 국가 운영의 원리로 재해석하여,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통치 이념으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해석이 추가되었습니다.
- 왕필본이나 하상공본보다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 무게를 둡니다.

 

참고로, 당나라 황실에서는 노자(본명 이이(李耳))를 같은 성씨 종친이라며 숭배하고, 신격화했습니다.  

 

 

이하 백서본(帛書本)과 죽간본(竹簡本)은 각각 고대 중국에서 발견된 도덕경의 두 가지 주요한 초기 판본입니다. 

각각의 판본은 문서의 재질과 출토 시기, 문구 구성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백서본보다 죽간본이 더 오래된 원시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서본은 비단에 쓰였고 비교적 완성된 문장 구성을 지녔다면, 죽간본은 대나무에 쓰인 형태로 더 단순하고 축약된 표현이 특징입니다. 

백서본은 죽간본 《노자》의 주석서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죽간본은 실존하는 《노자》의 가장 오래된 판본이 되었습니다.

 

4. 백서본(帛書本)

출토 시기: 백서본은 1973년에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长沙) 지역 마왕퇴(馬王堆)의 한나라 시대 무덤(汉墓)에서 발견되었습니다.
- 약 기원전 2세기 무렵의 유물로, 비단(백서)에 쓰여 있기 때문에 ‘백서본’이라 불립니다.

주요 특징:
- 백서본은 ‘덕경(德經)’이 ‘도경(道經)’보다 먼저 위치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도덕경’의 순서가 아닌 ‘덕도경(德道經)’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상공본, <한비자> 중 <해로>의 순서와도 같습니다. 

- 비단에 필사된 노자, 곧 백서(帛书) 노자 갑을본은 글자체의 연도를 기준으로 소전체 갑본과 예서체 을본으로 구분됐습니다.

   갑본(백서본 갑)은 기원전 3세기 중엽, 전국시대 말기, 한고조 이전의 판본이고, 을본(백서본 을)은 한나라 초기 판본으로 추정됩니다.

- 현재 통용되는 왕필본이나 후대의 다른 판본과 비교할 때, 문장과 구성이 조금 다르며, 일부 구절에서는 단어와 표현 차이가 눈에 띕니다.
- 백서본은 초기 도덕경의 문구와 원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노자 사상의 초기 형태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 백서본은 후대의 통용본에 비해 문장이 질박하고 단순한 표현이 많습니다.
- 문서의 배열 방식과 구절 구성이 다르며, 시대의 언어적 특성을 반영한 원형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 하상공본, 왕필본 등 후대의 판본에서 나타나는 체계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이 거의 없는 원형적인 도덕경입니다.


5. 죽간본(竹簡本) 또는 초간본(楚簡)

출토 시기:
- 죽간본은 1993년에 중국 호북성(湖北省) 형문시
전국시대 말기 초나라 무덤(기원전 3세기 초 이전) 곽점 초묘에서 출토된 전국시대(기원전 4세기) 죽간으로 기록된 판본입니다.
- 기원전 4세기 무렵의 유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형태의 도덕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특징:

- '곽점 초묘 죽간본'은 갑, 을, 병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이로써, 『노자』가 한대 이후 위작되었다는 설은 완전히 일소되었습니다.

- 죽간본 또한 백서본처럼 ‘덕경’을 ‘도경’보다 앞에 두고 있습니다. 즉, ‘덕도경’ 순서로 되어 있어 전통적인 순서와 다릅니다.

- 문장이 백서본보다 더 간결하고, 때로는 뜻이 모호한 구절이 많아 해석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 고대 중국어의 특징과 초기 도덕경의 원형적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어, 문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 백서본보다 더 간략하고 축약된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문구와 단어 선택에서 더욱 원초적이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백서본과 달리 철학적 체계나 해석적 추가 요소가 거의 없는 반면, 백서본은 당대의 사상적 흐름이 조금 더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곽점초간은 크게 도가 계통의 문헌과 유가 계통의 문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자에 속하는 것은 ‘노자(老子)’ 갑·을·병과 ‘태일생수(太一生水)’ 2종 4편이고,

후자에 속하는 것은 ‘치의(緇衣)’, ‘노목공문자사(魯穆公問子思)’, '궁달이시(窮達以時)’, ‘오행(五行)’, ‘당우지도(唐虞之道)’, ‘충신지도(忠信之道)’, ‘성지문지(成之聞之)’, ‘존덕의(尊德義)’, ‘성자명출(性自命出)', ‘육덕(六德)’의 10편입니다.

그 밖에 단편적인 문장이 나열되어 있는 ‘어총(語叢)’ 1~4가 있다. 

 

이 외에, 개원어주본이 있는데요.

이는 당나라 현종 이융기(712-756)가 개원 20년 직접 주석하고 도교 사원에 묘비를 만들어 새긴 판본입니다.

 

3. 노자, 도가 사상이란

 

노자의 사상은 인위적,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본성에 따라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서 '무위자연'입니다.

주요 개념은 "도(道)", "덕(德)", "상선약수(上善若水)", "겸허(謙虛)" 등입니다.

요약하면, 『도덕경』 사상은 모든 거짓됨과 인위에서 벗어나려는 사상이다.

 

노자는 중국에서 우주의 만물에 대해 최초로 생각한 인물로, 그가 발견한 우주의 진리를 도(道)라고 칭하며,

우주 만물이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이치를 '도'라고 설명합니다.

 

좋다 · 나쁘다, 크다 · 작다, 높다 · 낮다 등의 가치 판단은 인위적 비교로 만들어진 상대적 개념이며,

이런 개념들로는 도(道)를 밝혀낼 수 없습니다.

 

언어는 상대적 개념들의 집합체이므로 『도덕경』에서는 규정성의 파기와 언어에 대한 부정을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점에서 유가사상과 현격한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유가사상에서는 인위적 제도가 강조되는 예학(禮學)이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으며, 언어에 의한 규정이 강력하게 요청됩니다.

 

유가와 도가 사상의 차이는 지역에 따른 기질적인 차이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유가사상이 중국 북방의 황하유역에서 현실적이고 투쟁적인 성향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인 반면,

도가사상은 날씨가 온화하고 자연 조건이 순조로워 평화적이고 낭만적인 중국 남방의 양쯔강유역에서 형성되었습니다.

 

무(無)와 자연의 불상쟁(不相爭) 논리를 펴나간 도가 사상은 학문적인 진리 탐구의 대상이자,

위 · 진 남북조시대처럼 사회가 혼란과 역경에 빠져 있을 때,

새로운 삶의 지혜를 밝혀 주는 수양서로서도 받아들여졌으며, 민간신앙과 융합되면서 피지배계급에게 호소력을 지닌 사상 및 세계관의 기능을 수행하였습니다.

 

『노자』가 백성들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권력자의 입장에서 쓴 처세술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사상이 '권력과 재산을 더 가지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지 말라'는 '공수신퇴(功遂身退)'로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백서본

 

무엇이든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듯이, 사실, 노자 텍스트 또한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철학적,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적, 정치철학적, 인식론적, 본체론적 등 그리고 사회적 해석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한 장 한 장 상세하게 해석해볼게요. 

 

4. 우리나라 역사 속 도가 사상

 

현재 우리나라에서 도가, 노장사상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요.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역사 속 도가 사상에 대해 소개할게요.

 

우선, 도가 사상은, 종교적 의미의 도교와 철학사상적 도가로 구분됩니다.

학자에 따라, 도교가 도가를 포함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도가는 선진시기부터 유가의 대립 사상으로 형성된 사상이었고,

도교는 한대 이후, 전국시기 말기부터 진전된 황로학에 의해 종교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가 경전도 제시된 사록이 있지만, 신앙으로서 그 작용이 더 두드러졌습니다. 

고려 때, 도교신앙이 제일 돈독하고 재위 당시 도교가 융성하였던 예종이 한안인(韓安仁)에게 『도덕경』을 강론하게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유교경전과 대등하게 다루어서 강론시켰을 정도였는데요.

이로써, 당시 『도덕경』을 연구하던 사람의 숫자도 많았고 수준도 높았으리라 짐작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적 사상(朱子學的思想)과 그 배타적 성격 때문에 『도덕경』에 대한 연구가 위축되었지만, 유학자들 가운데서 주석서를 펴기도 했습니다. 

  • 박세당(朴世堂)의 『신주도덕경(新註道德經)』
  • 율곡 이이(李珥)는 『도덕경』 81장을 40여 장으로 줄여, 『순언(醇言)』이라는 주석서를 냈습니다.

그러나, 자신 이외는 모든 사상을 이단으로 보는 성리학의 성격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도덕경』은 물론, 도가에 관한 관심이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도덕경』은 일찍부터 도교신앙과 접합되어 오면서, 민중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기층 민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노자의 사상은 개인의 삶, 인간 관계, 그리고 국가 운영에서 모두 자연스러움과 조화를 강조합니다.

저는 무위와 자연을 강조하는 노자, 도가 사상을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만물의 자연성으로부터 개인 본성과 자연 의지를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해석합니다. 

 

다양한 의견 환영합니다. 함께 이야기 나눠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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