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업하는 철학자입니다.
오늘은 한국문집 <존재집(存齋集)> 일부를 번역할게요.
존재집의 저자는 위백규입니다.
위백규(魏伯珪)의 논어차의(論語箚義)는 논어 문장의 특징인 허자(虛字)를 집중 분석한 작품입니다.
이전의 주석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접근방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허자: 한자에서 형상(形狀)이 없는 사물을 나타내는 글자.
*차의: 찌를 차(箚)는 기록하다는 의미가 있고, 옳을 의(義)는 뜻, 의미라는 의미이니, 차의는 의미에 대한 기록 정도로 여기면 됩니다.
위백규
조선 후기의 학자, 실학자.
위백규(魏伯珪)의 본관은 전라도 장흥(長興), 자는 자화(子華),
호는 존재(存齋) · 계항(桂巷) · 계항거사(桂巷居士)입니다.
부자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제대로 거둬야 하며,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한테는 잡다한 세금을 면제하고, 자력으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백규는 순창의 여암 신경준(1712-1781), 고창의 이재 황윤석(1729-1791)과 더불어
호남 3천재 실학자로 불리는, 호남을 대표하는 실학자로서,
1700년대에 힘 있는 부자가 더 많이 갖고 사치를 하며,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며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심각성을 지적했습니다.
윤봉구를 통해 서인- 노론의 학맥을 계승하였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한 후, 지역 현실을 반영하여 경세학(經世學)과 지리학 등에 남다른 성과를 냈습니다.
위백규의 학문적 특성은 박학입니다.
경학(經學)이나 경세학 분야 외에도 지리학, 역사학, 문학, 유서학(類書學) 등 다방면에 걸친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중, 『환영지(寰瀛誌)』와 같은 지리서
혹은 유서나 「상론(尙論)」과 「대명기(大明紀)」 같은 사론,
이 밖에 『정현신보(政鉉新譜)』, 『경서조대(經書條對)』, 『경서차록(經書箚錄)』, 『고금(古琴)』, 『시소전기서설(詩疏傳記序說)』 등이 있습니다.
참고로, 1770년에 펴낸 환영지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도 훨씬 앞선
우리나라 최초 세계지리서 겸 팔도지리서입니다.
국정 전반에 걸친 사회 개혁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는데요.
토지 제도, 세제, 군역, 공물, 상공업, 지방행정, 관리 선발 제도, 도량형 제도, 민생안정론, 향토방위론 등 방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개혁을 위해 향촌 사회의 지식인들을 주도 계층으로 설정하여
지역의 향촌, 그 가운데서도 향중(鄕中)의 공론과 자율성이 중심이 되는 개혁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향중: 좌수(座首), 별감(別監) 따위의 향소의 직원(職員)인 향원(鄕員)의 동아리.
위의 내용이 사전적 정의인데요.
향소의 직원인 향원은 알겠지만, 향원의 동아리라니.
대강 향원 조직 일체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면 되겠지만,
우리나라 전통 학술의 미래를 위해서는
한자어 해설을 통한 순화 작업이 필수적이겠습니다.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존재집
위백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75년에 간행한 시문집으로 24권 12책입니다.
1875년(고종 12) 위백규의 후손 위병석(魏炳錫)과 족손 위영복(魏榮馥) 등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
1974년 후손에 의해 종가에 전해 오던 정초본(正草本)에 「환영지(寰瀛誌)」를 합해 『존재전서(存齋全書)』로 영인되었습니다.
권두에 임헌회(任憲晦)의 서문이 있고 발문은 없습니다.
위백규의 저서는 본디 90여 권이었다 하는데,
정조의 명으로 24권을 내각(內閣)에 들여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많은 양의 저작이 유실됐다고 추측됩니다.
- 권 1: 시
- 권 2: 만언봉사(萬言封事)
- 권 3: 소(疏)
- 권 4: 장(狀)·서(書)
- 권 5∼10: 독서차의(讀書箚義)
- 권 11∼20: 잡저
- 권 21: 서(序)·기·발
- 권 22: 명(銘)·잠(箴)·제문·축문·비명·묘갈·묘표
- 권 23: 묘지·행장·유사·전(傳)
- 권 24: 부록으로 연보·행장·묘지명·위유사계목(慰諭使啓目)·경기수계(京畿繡啓)·별단이조계(別單吏曹啓) 등
그중, 「독서차의」는 사서를 공부하면서 경문과 전문(傳文)의 훈고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장(章)마다 상세하게 주석을 가한 내용입니다.
이로써 저자의 학문적 심오함을 살필 수 있으며, 사서를 공부하는 데에도 훌륭한 참고서가 되는 저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차의발(箚義跋)」에서는 ‘수기이사천(修己以竢天)’이라는 말이 천고성현(千古聖賢)이 대대로 전하는 묘결임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 공부보다 경서의 자구를 깊이 연구하고, 이를 음미하며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중 논어차의 일부를 살펴볼게요.
子曰:“好勇疾貧,亂也。人而不仁,疾之已甚,亂也。”
공자가 말하였다.
“용맹을 좋아하고 가난을 싫어하는 것은 혼란스러움이다. 사람이면서 인하지 못한 것을, 너무 심하게 미워하는 것은, 혼란스러움이다.”
惡不仁,當然之事。疾則與惡異矣。
불인(不仁)(한 사람)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워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과 다르다.
有不忍耐而與爲對斥之意,已是褊心,況已甚乎?
참아 내지 못하고 맞서려는 뜻이 있으면, 이미 편협한 마음이니, 하물며 심하게 미워하는 경우에 있어서이겠는가?
無所容則, 致亂必矣。學者當熟思, 其處之之方。
용납할 수 없으면, 필시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배우는 자는 응당 그 대처하는 방도를 익숙히 생각해야 한다.
子曰:“君子而不仁者有矣夫,未有小人而仁者也。”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로서 인하지 못한 자는 있어도 소인으로서 인한 자는 있지 않다.”〔子曰 君子而不仁者 有矣夫 未有小人而仁者也〕
君子志於仁,便是仁之徒也。但仁道至大,苟有一毫差忽,便是不仁。
군자는 인에 뜻을 두니, 바로 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다만 인의 도리는 지극히 크지만, 터럭만큼이라도 차질이 있으면, 곧바로 불인(不仁)이다.
是責備賢者,而警學者日新而致極工也。非謂君子例有不仁也。
이는 현자에게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말이며, 배우는 자에게 날로 새로워지고 극진히 공부하도록 깨우치는 말이다.
군자가 으레 불인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故“矣”字下着“夫”字。若只用“矣”字,則揔斷之辭,着“夫”字則或有之辭。小人則直以“也”字斷之。
때문에 ‘의(矣)’ 자 아래에 ‘부(夫)’ 자를 쓴 것이다. 만약 ‘의’ 자만 썼다면, 오로지 단정 짓는 표현이고, ‘부’ 자를 이어 쓴 것은 더러 있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소인의 경우 곧바로 ‘야(也)’ 자를 써서 단정했다.
子曰:“愛之,能勿勞乎?忠焉,能勿誨乎?”
공자가 말하였다.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愚父之愛子,逸之以敗其性,不慈莫甚;鄙夫之忠君,逢之以長其惡,爲賊莫甚。
어리석은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할 때, 안일하게 함으로써 그(자식)의 성품을 망치니, 이보다 자애롭지 못한 경우가 없고,
못난 사람이 임금에게 충성할 때, 영합하여 그(임금)의 악을 부추기니, 이보다 심하게 임금을 해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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